'실수요 잡는' 8.25 가계부채 대책…"단기처방 불과"
'실수요 잡는' 8.25 가계부채 대책…"단기처방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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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정부가 폭증하는 가계대출을 억제하겠다며 공급 측면에서의 부동산시장 규제에 나섰다. 주택공급 물량을 줄이면 대출 수요도 자연스레 축소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금융 측면에서의 핵심 규제가 빠진 만큼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정작 가계부채를 증가시키는 투기수요는 잡지 못한 채 애꿎은 실수요자들만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다.

◆ LTV·DTI, 분양권 전매 등 핵심규제 빠져

25일 정부가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핵심은 그동안 손댄적 없던 주택공급 규제다. 토지주택공사(LH) 공공택지 물량을 줄여, 주택담보대출 중 큰 몫을 차지하는 집단대출을 조이겠다는 취지다.

이에 정부는 처음으로 금융대책만이 아닌 주택시장을 반영한 균형있는 대응을 내놨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다시 강화하거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집단대출에 적용하는 등의 금융관련 규제는 빠졌다. 또 새로 분양된 아파트를 샀을 때 일정 기간 매매를 금지하는 '분양권 전매 제한'도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가 부처간 눈치싸움에 자칫 부동산 경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규제들은 제외시켰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 그래픽=서울파이낸스DB

이와 관련 이찬우 기재부 차관보는 전날 서울 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정책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것보다 원인에 대해서 정확한 분석을 해야 하고,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모니터링 해야 한다"며 "주택공급 조절이나 자체적인 심사 강화만으로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의 관심이 높았던 분양권 전매제한이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해서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했는데, 분양권 전매제한을 하게 되면 둔탁한 규제가 되고 주택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며 "(이번 대책은) 포커스를 공급 부분에 두고 조절해나가는 것이다. 필요하면 수요 쪽에도 규제를 검토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는 대상에 포함시키진 않았다"고 말했다.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에 집단대출을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점도 의문을 남겼다. 도규상 금융정책국장은 "가계부채에 가장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조치는 집단대출이 나가지 않는 것"이라며 "이번 공급 조절이 효과를 낼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만 도 국장은 "시장의 과열 현상이 예측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커질 때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 "정책의도 이해 못해" 전문가 혹평 잇따라

정부가 이번 대책을 특효약으로 내세운 것과 달리,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주택 공급 축소는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애꿎은 실수요자들만 피해를 입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으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억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치솟는 집값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이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이럴 경우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와 가계대출의 병세 악화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것.

윤석헌 전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오히려 지금은 주택물량을 늘려 수요자들에게 공급을 해야 할 때인데, 정부가 현실과 상반된 정책을 내놨다"며 "정작 조여야 하는 금융정책에서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중도금대출 보증 횟수를 줄이는 등 몇가지를 마련하긴 했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는 부분들"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윤 교수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 특유의 선분양 제도를 '후분양 제도'로 고치면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이번 대책에 언급조차 안됐다"고 꼬집었다.

선분양 제도는 공사가 완료되기 전에 주택 분양부터 먼저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제도 탓에 우리나라에는 '집단대출'과 '분양권 전매'라는 기형적인 관행이 만들어졌다. 이에 시장 안팎에서는 근본적인 분양 투기를 없애고 집단대출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나라처럼 후분양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윤 교수는 "정부가 해야할 일은 투기성 주택 구입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인데, 오히려 주택 공급을 줄여 실제로 집을 사려는 사람들만 힘들어지게 됐다"며 "투기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승연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도 정부의 이번 대책을 장기적인 가계부채 관리방안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의견을 내놨다.

원 교수는 "원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자신의 소득보다 집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사람들이 돈을 빌려 집을 사게 되고, 이 때문에 가계부채가 증가하게 되는 것"이라며 "이번 정부의 대책은 공급을 줄여 사람들이 주택을 못사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 집값이 상승하면 과연 장기적으로 가계부채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장 주택 공급을 억제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몇년 뒤에는 수요가 생길텐데, 일시적으로 (가계부채 증가세를) 모면하자는 차원의 정책이 아닌가 싶다"며 "직접적으로 대출을 규제하지 않으면 가계부채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책이 가계부채의 총략억제 효과로 이어지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진성 KB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작년처럼 비정상적인 분양 급증을 막는 선에서는 효과가 있겠지만, 일반적 상황에서는 가계부채 억제에 큰 효과가 있는 정책으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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