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뒤덮은 인사 내정설…'정권 트라우마'에 숨죽인 은행들
금융권 뒤덮은 인사 내정설…'정권 트라우마'에 숨죽인 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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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銀發 '외압설' 잇달아…연임 앞둔 금융사 '긴장'
감사원 출신 김조원 금감원장 기용설 가세 '뒤숭숭'
"전 정권보다 민간은행 인사권 존중해줄 것" 기대감

[서울파이낸스 이은선 기자] 새 정부 출범 이후 잠잠했던 금융권 인선이 탄력을 받으면서 은행권이 숨을 죽이고 있다. 지방금융지주를 중심으로 경영진 인사 외압설이 제기되는 탓이다. 당장 오는 11월 경영진 임기를 앞둔 KB금융지주를 비롯한 은행권도 '정권 트라우마'를 경계하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의 금융감독원장 기용설이 제기되면서 은행권 안팎에서 인사권 개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다른 한편, 새정부가 '관치' 또는 '정치금융'이라는 오명을 스스로 자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상존해 있다. 특히 새정부가 과거 어느 정권보다도 '민주정부'를 강조한다는 점을 감안할때 정권 초기에 나타나는 일종의 '낯가림 현상'만 해소된다면 인사를 둘러싼 분위기 경색은 자연스럽게 풀리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개혁의 필요성 때문에 감사원 출신 인사를 금감원장에 기용하더라도 그 파장이 민간은행 인사로 까지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금융권도 새정부의 개혁 요구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와 구체적인 노력으로 부응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다.

26일 금융당국 및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주말 터져나온 박인규 DGB금융그룹 회장(대구은행장)의 교체설을 계기로 민간 금융사 인선에 대한 외부 개입 우려감이 증폭되고 있다. 지방은행의 경우 특히 정권과 지역정치 권력에 취약해 때마다 경영진 교체 리스크가 부각돼 왔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박 회장의 교체설은 대구은행이 이른바 '상품권깡'을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부 직원의 투서로 촉발됐다. 투서를 받은 경찰이 내사에 들어간 가운데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박 회장의 교체설까지 터져나온 것이다. 특히 박 회장이 지난주 금융위원회 고위관계자와 거취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긴장감은 고조됐다.

일단 박 회장이 사태를 먼저 수습한 뒤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교체설은 잠잠해진 상황. 하지만 이번 사태로 대구은행 내부의 경영진 반대 세력이 존재한다는 점까지 확인되면서 분위기는 여전히 뒤숭숭하다. 박 회장의 임기는 오는 2020년까지지만 대구은행의 경영진 인사는 통상 연임이 결정된 이후, 용퇴의 성격으로 교체가 결정됐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 정권의 인사 성향을 확인할 첫 단추로 여겨진 BNK금융지주 회장 인선에서도 불안한 기운이 감지됐다. 최종 면접 이후 미뤄진 지난 22일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도 단일 후보로 의견이 모아지지 않은 것이다. 특히 임추위는 수일 가량의 말미를 두던 평소와 달리 추가 논의 일정을 3주나 뒤로 미루면서 위원들 간 합의가 어려운 상황임을 시사했다. 실제로 6인의 임추위원은 정권 낙하산 논란을 겪고 있는 김지완 전 하나금융 부회장과 내부 직원들의 요구 목소리가 높은 박재경 BNK금융 회장 대행을 3대 3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각종 비리나 법적문제에 휘말려 있는 지방은행들과는 근본적인 상황부터가 다르지만 시중은행들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당장 오는 10월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KB금융부터 이같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KB금융 역시 경영진 교체 때마다 정권 외압과 내부 갈등에 취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자행 노조 선거 개입 의혹이 있는 임원 2명을 전격 해임했다. 이 과정에서 윤종규 회장이 직접 사과 이메일을 보내고 처우 개선을 약속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은행 측이 노조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배경과 관련해 윤 회장의 임기를 앞두고 노조와의 갈등이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종전까지만 해도 윤 회장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분위기를 볼 때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당장 윤 회장의 임기가 가시권에 들어온 만큼 신경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KB금융 회장직은 다른 민간은행 경영진 인사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지켜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KB금융이 민간금융회사라는 점, 윤 회장 재임시 호실적, 그리고 회장과 행장 겸직체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때 윤 회장의 연임이 여전히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새정부가 굳이 무리수를 둬 민간 금융권의 반발이나 갈등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물론 회장·행장 겸직체제는 경영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배제할 경우 '양날의 칼'로 작용할 소지는 안고 있다.

내년 3월 회장 임기를 앞두고 있는 KEB하나은행도 몸을 바짝 사리는 분위기다. KEB하나은행은 다음달 초로 예정된 통합 2주년 기념행사를 대폭 축소할 방침으로, 외부 인사까지 초청하는 대신 내부 행사로 조용히 치르겠다는 계획이다. 민영화 추진을 위해 새 정권을 기다렸던 우리은행의 경우도 당장은 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가계부채 대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당 은행 관계자는 "지금 은행들로서는 일단 조용히 경영을 잘 하는 수 밖에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차기 금감원장에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은행권 내부적으로는 우려와 함께 불만도 쌓여가고 있다. 금융권 경력이 전무한 김 전 사무총장을 금감원장에 선임하는 목적이 금융권 개혁에 있을 것이란 관측에서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융 경력이 전무한 감사원 출신 금감원장을 선임하겠다는 것은 은행권을 다 뒤집어 엎겠다는 시도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면서도 "전 정권보다 민간은행의 인사권을 존중해줄 것이란 기대가 깨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적 개혁'을 기치로 내건 새정부가 보수적인 은행권의 인사에 대해 어떤 관점과 방식으로 접근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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