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명만 바꿔도 억소리···집값 상승 노린 아파트 '택갈이'
지역명만 바꿔도 억소리···집값 상승 노린 아파트 '택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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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던 '서반포' 명칭도 등장···집값 상승하는 서초구 등 강남권 편입 효과 기대
'목동' 사용하는 양천구 신정·신월동 단지···경기 덕은지구는 서울의 'DMC'붙여
'마장'→'왕십리·청계'로 개명 인기···개명 후 한달만에 매매가 30% 뛴 단지 나와
현재 신축 아파트 작명 제한 규정없어···택배물 혼란·지역 주민 간 갈등 우려도
기존 '신촌 그랑자이'에서 지난해 '마포 그랑자이'로 이름을 바꾼 아파트 단지. (사진=네이버)
기존 '신촌 그랑자이'에서 지난해 '마포 그랑자이'로 이름을 바꾼 아파트 단지. (사진=네이버)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과거 어려운 외국어 사용과 긴 작명으로 논란이 돼 왔던 아파트 단지 이름이 이번엔 '지역 이름'으로 논란이 됐다. 서울 내에서도 지역 간 집값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커지자 아파트 단지 이름에 무리하게 인기 지역 이름을 넣으려는 곳이 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서울에 존재하지도 않는 '서반포'라는 지역을 단지 이름에 붙이는 곳도 등장하면서, 집값 상승을 노린 작명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2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동작구 흑석11구역에 들어설 1522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는 최근 조합원 투표를 거쳐 단지 이름을 '서반포 써밋 더힐'로 정했다. 재개발 시행사 한국토지신탁도 이번달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철거 단계 진입으로 흑석11구역 재개발은 '반포 써밋 더힐'의 재탄생에 성큼 다가서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흑석11구역은 서울 동작구에 해당하는데, 생활권을 공유하지 않는 서초구에 속한 '반포'를 단지 이름에 사용한 것이다. 인근 흑석뉴타운 단지들이 '흑석 아크로리버하임'이나 '흑석 리버파크자이' 등 이름을 붙인 것과 비교해 비판을 받았다.

이 단지가 '흑석' 대신 '서반포'를 붙인 것은 반포 등의 강남권이 상징하는 부촌 효과를 누리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더욱이 '서반포'라는 지명은 서울에 존재하지 않는 이름인데, 논란이 되자 조합과 시행사 측은 시공사 대우건설이 입지 홍보를 위해 입찰 제안서에 먼저 '서반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대우건설 측은 "서반포라는 용어를 입찰 제안서에 사용한 건 맞지만 정식 단지 이름으로 검토한 적은 없다"며 "아직 결정된 게 없고 아파트 이름은 내년이나 내후년 분양 전 조합과 협의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행정구역이 다른 인근 상급지나 명소 이름을 아파트 단지명에 넣는 사례들은 전에도 있었다. 양천구 신정동과 신월동의 아파트들이 '목동'을 단지 이름에 붙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목동 힐스테이트', '래미안 목동 아델리체', '호반써밋 목동' '센트럴 아이파트 위브'는 모두 목동 밖에 있는 아파트다. 또 현재 덕은지구 내 모든 아파트 이름에는 DMC(디지털미디어시티)가 붙었으나, 덕은지구는 경기도 고양시, DMC는 서울 마포구다.

아파트들이 이같이 단지 이름을 신경쓰는 이유는 지역을 포함한 아파트 이름이 집값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여겨서다. 축산물시장 이미지가 강한 마장동에선 최근 '마장'대신 교통 입지를 강조한 '왕십리'와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주는 '청계'로 단지 이름을 바꾸는 사례가 많아졌다. 가장 먼저 단지 이름을 바꾼 곳은 '왕십리 금호어울림'으로 기존 '마장 금호어울림'에서 개명한 후 한 달 만에  전용 84㎡의 평균 매매가가 10억원에서 13억4500만원으로 30%넘게 뛰었다. 같은 기간 마장동 다른 아파트값은 큰 변동이 없었다.

이에 일대 '마장'이 붙었던 아파트에서 단지 이름을 바꾸는 사례가 급격히 늘었다. 지난달에는 '마장 삼성래미안'이 '왕십리 삼성래미안'으로 단지 이름을 교체했고, 이번달 초에는 '마장 현대'가 '청계 현대'로 이름을 바꿨다. 취재 결과 현재 '마장 중앙하이츠'도 '왕십리 중앙하이츠'로 개명을 추진 중이다. 마포구 대현동과 아현동 일대 아파트에서도 '신촌'이나 '대현', '아현'대신 상위 지역인 '마포'로 단지명을 교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신촌 그랑자이'가 '마포 그랑자이'로 이름을 바꾸면서 인근에서 최고가 아파트로 올라섰다.

이같은 사례가 늘자 서울시는 올해 2월 발간한 아파트 이름 길라잡이에서 다른 지역의 법정동·행정동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으나, 이는 권고사항일 뿐 현재 제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서반포' 등 새로운 이름을 지어 붙인다고 해도 이를 막을 순 없다.

다만 최초 작명이 아닌 단지 이름 변경에 대해서는 대지 현황에 맞게 지어야 된다는 법률이 있긴 하다. 양천구 신월동에 있는 '신정뉴타운 롯데캐슬' 입주민들은 2020년 단지 이름을 '목동 센트럴 롯데캐슬'로 바꾸는 신청서를 양천구청에 제출했으나, 양천구청은 신월동에 아파트 단지명을 목동으로 표시하는 게 부적절하다며 이를 반려했다. 위치 파악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행정구역이 아닌 지역 이름을 붙이는 아파트가 늘어날 경우 우편물·택배 등의 혼란이 잦아짐은 물론, 지역 주민 간 갈등까지 유발할 수 있어 자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서울시가 아파트 단지 이름의 길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처럼, 이제는 동(洞)명이나 지역 이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 법적 제재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으면 아파트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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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이 2024-04-30 17:03:04
헐...잘알아봐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