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난은 없다"···SK, 위기 속 형제경영 확대
"형제의 난은 없다"···SK, 위기 속 형제경영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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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최창원 수펙스 의장, 경영진에 '리밸런싱' 주문
최재원 SK온 부회장, 배터리 사업 흑자전환 역량 집중
선대 회장부터 이어온 SK家 형제애, 위기 속 역할 확대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최종건 SK 창업주와 최종현 선대회장의 생가. (사진=SK그룹)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최종건 SK 창업주와 최종현 선대회장의 생가. (사진=SK그룹)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SK그룹이 최근 '형제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다른 재벌가에서 '형제의 난'이 심심치 않게 일어날 때 SK는 형제가 힘을 모아 회사를 이끄는 모양새다. 

재계에 따르면 최창원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SK디스커버리 수석부회장)은 23일 SK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회의를 주재하고 주요 계열사 CEO에게 '전열 재정비'를 당부했다. 

최창원 의장은 "환경변화를 미리 읽고 계획을 정비하는 것은 일상적 경영활동으로 당연한 일인데 미리 잘 대비한 사업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영역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CEO들이 먼저 겸손하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미래 성장에 필요한 과제들을 잘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SK는 글로벌 시장에서 강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는 사업군과 성장 잠재력이 충분한 포트폴리오, 탄탄한 기술·사업 역량과 자원 등을 두루 보유하고 있다"며 "더 큰 도약을 위해 자신감을 갖고 기민하게 전열을 재정비하자"고 당부했다.

최창원 의장은 지난해 12월 SK그룹 조직개편을 통해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선임됐다. 최 의장은 최종건 SK그룹 초대 회장의 삼남으로 최태원 SK 회장,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 형제와는 사촌지간이다. 

2013년 처음 만들어진 수펙스추구협의회는 그동안 전문경영인들이 의장 역할을 맡았다. 초대 의장이었던 김창근 의장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출신이었고 후임 조대식 의장은 SK 지주사와 SK바이오팜 등에서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최창원 의장은 SK건설과 SK케미칼 등을 거쳐 현재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다. SK디스커버리는 SK케미칼에서 분할한 존속법인으로 최태원 회장의 SK그룹과는 별개의 회사다. SK디스커버리의 최대 주주는 지분 40.18%를 보유한 최창원 의장이다. 사업 자회사로는 SK케미칼과 SK가스, SK디앤디, SK바이오사이언스 등 에너지·화학 자회사가 있다. 

본격적인 브랜드 독립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최태원 회장과 최창원 의장은 사실상 별도의 사업체를 운영 중인 셈이다. 지분정리를 거친 재벌가 형제 간에 경영 도움을 주고 협력하는 경우는 재계에서 이례적이다. 특히 형제의 난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재벌가에서는 더더욱 흔치 않은 일이다. 

최창원 의장 외에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도 SK그룹의 핵심 사업체인 SK온을 이끌고 있다. 최재원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CES 등 배터리·가전 분야 국제박람회에 최태원 회장과 함께 참석하며 해외 고객사 확보와 기술동향 파악에 집중하고 있다. 최재원 부회장은 그동안 지주사 공동대표이사와 수석부회장 등을 맡으며 형 최태원 회장의 그룹 경영을 보좌하는 역할을 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27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에서 열린 '글로벌 텔코 AI 얼라이언스 CEO 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SK텔레콤)
최태원 SK 회장. (사진=SK텔레콤)

이 같은 SK그룹의 형제경영은 선대 회장인 최종건, 종현 형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종건 초대 회장이 폐암으로 1973년 별세하자 동생 최종현 회장이 어린 조카들을 대신해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그러다 최종현 회장도 1998년 별세하면서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이 경영권을 물려받아야 했다. 그러나 형제들 모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분이 적어 경영권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가운데 최종건 회장의 자녀 중 최윤원, 신원 형제가 경영에 뜻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고 형제들 중 이미 최태원 회장이 경영능력을 검증받아 최태원 회장이 지분을 모두 넘겨받고 SK그룹의 회장직에 오르게 됐다. 재계에 따르면 이들 형제는 어릴 때부터 함께 뛰어놀고 공부할 정도로 우애가 깊은 편이었다. 

이 같은 형제애는 2018년에도 한차례 드러났다. 당시 최태원 회장은 자신의 SK㈜ 지분 중 일부를 최재원 부회장과 사촌인 故 최윤원 SK케미칼 회장 가족,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 가족에 증여했다. SK그룹에 따르면 당시 최태원 회장은 친족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는 차원에서 지분 증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최근 가족모임에서 이 같은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최근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연임하게 되면서 형제들이 경영 전면에 등장하는 일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회장이 앞으로 3년 더 SK그룹과 대한상의를 동시에 살피기로 하면서 그룹 경영에 대한 형제들의 지원이 더 필요해졌다. 특히 그룹에서 최근 집중 투자한 배터리 사업은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 둔화로 침체를 맞고 있다. 배터리 주력 회사인 SK온은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적자를 보고 있다. 

반도체는 지난해 적자의 늪에서 벗어났지만, AI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면서 글로벌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여기에 바이오 사업 역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최태원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해현경장'(거문고 줄을 고쳐매다)의 자세로 경영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정도로 위기대응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SK그룹에서는 토요 사장단회의가 부활했고 고강도 쇄신도 강조되고 있다. 이미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통해 주요 경영진 대부분을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해현경장'을 언급할 정도로 대내외 경영환경에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무거운 상황"이라며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면서 재계 맏형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 형제들의 역할도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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