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지는 공사 안 해"···건설사 도시정비사업 수주경쟁 '빈익빈 부익부'
"밑지는 공사 안 해"···건설사 도시정비사업 수주경쟁 '빈익빈 부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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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0대 건설사 중 7곳, 1분기 재건축·재개발 수주 실적 제로
공사비 급등에 수주경쟁 사라진 정비사업···수의계약‧유찰사례 속출
"정비수주 실적 작년보다 더 저조할 것"···3~5년 뒤 공급절벽 우려도
아파트 건설 현장.(사진=서울파이낸스DB)
아파트 건설 현장.(사진=서울파이낸스DB)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고물가, 고금리,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리스크 확대 등의 여파로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수주를 놓고 경쟁하던 모습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공사비 급등과 미분양 적체 등에 따른 수익성 하락을 우려한 건설사들이 과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겼던 재건축·재개발 등 주택 사업 대신 해외 신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탓이다. 이 같은 추세가 장기화할 경우 향후 신축 공급 절벽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 1분기 10대 건설사의 도시정비사업 수주액은 총 3조999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조5242억원보다 5248억원(12%) 감소했다.

지난해 1분기 10대 건설사 중 6곳이 도시정비 수주실적을 냈는데 비해 올해 같은 기간 마수걸이 수주에 성공한 건설사는 현대건설, 포스코이앤씨, SK에코플랜트 단 3곳뿐이다. 올해 1분기 조 단위 수주액을 확보한 곳은 지난해부터 공격적인 수주에 나선 포스코이앤씨와 전통의 정비사업 강자 현대건설 두 곳에 불과했다.

포스코이앤씨는 부산 촉진2-1구역과 고양 별빛마을 리모델링, 금정역 산본1동 재개발 등의 시공권을 확보하며 2조3321억원의 수주액을 기록했다. 현대건설도 여의도 한양아파트와 성남중2구역 재건축 사업을 따내며 1조4522억원의 수주액을 기록했다. SK에코플랜트는 2151억원의 미아11구역 재개발 사업을 수주했다. 이 가운데 대형건설사 간 수주경쟁이 펼쳐진 곳은 촉진 2-1구역과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뿐이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여러 건설사가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나 최근 기조가 180도 바뀐 모습이다. 공사비 급등과 고금리, 분양시장 침체 등으로 사업성이 떨어지자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참여를 신중히 따져보는 분위기가 확산하는 것이다. 실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집계한 올 2월 건설공사비지수(2015년=100)는 154.8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월(154.64)이나 지난해 2월(150.99)보다도 크게 오른 수준이다. 3년 전인 2021년 2월(124.84)에 비해서는 급등했다. 
 
건설사들이 주택사업 비중을 줄이고 포트폴리오 전환에 나서면서 수주경쟁이 사라지고 수의계약이나 유찰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신반포와 강남 등 서울 주요 사업장에서 치열한 수주전이 예상됐으나 공사비 문제로 건설사가 응찰하지 않는 사례가 빈번했다. 일부 사업지는 시공사의 입찰 참여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단독 입찰로 시공사 선정되기도 했다.

정비사업에서 수의계약이 대세가 된 가운데 경쟁 입찰이 이뤄지는 주요 입지의 경우 건설사들이 사활을 걸고 나서면서 오히려 출혈이 커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올해 첫 대형 수주전이 벌어진 부산 촉진 2-1구역 재개발 경우 상호 비방전부터 불법 홍보나 금품‧향응 제공 등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또 여의도 한양아파트의 경우 이례적으로 윤영준 현대건설 대표이사가 직접 현장을 방문해 '조합원 표심잡기'에 나서기도 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선별수주나 보수적인 전략으로 수의계약 또는 유찰 사례가 많아진 한편으론 주요 입지 수주전에선 오히려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면서 "시공권을 따내지 못하면 결국 소요된 모든 비용이 회수할 수 없는 매몰비용이 되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리한 조건이나 저가 공사비 등을 제시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압구정 3구역, 한남 5구역, 신반포 2차 등이 연내 시공사 선정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시공권 확보를 위해 건설사들의 치열한 각축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 압구정 2~5구역의 시공권 확보를 위해 연초부터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등은 '압구정 TF팀'을 신설하고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남재정비촉진구역(한남뉴타운)은 서울 제2의 부촌으로 불리는 용산에서도 재개발 가치가 높다고 평가 받으며, 신반포 2차 재건축사업의 경우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등이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정비사업 수주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며 건설사들이 소극적인 수주 행보에 나서는 추세가 지속될 경우 3~5년 뒤 신축 아파트의 공급 절벽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주택 사업 전망도 밝지 않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주택사업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이달 주택사업 경기 전망지수는 전월 대비 8.1포인트(p) 상승했지만 여전히 70선을 유지하고 있다. 주택사업 경기 전망지수는 10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개선 전망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이하면 반대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업성 악화 리스크로 주택시장 침체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올해 건설사들의 정비사업 수주 실적은 작년보다 더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하반기에는 소폭 개선될 수 있겠으나 2분기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더 낮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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